[반박 기고문] 규정의 잣대 너머,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교회의 본질: 풀향기교회 사태의 진실을 말한다
최근 일부 언론과 비판 측을 통해 보도된 풀향기교회 사태는, 교단 헌법이라는 엄격한 잣대 이면에 가려진 한 교회의 아름다운 회복 스토리와 성도들의 피땀 어린 눈물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질서를 위해 법과 규정은 존중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 규정의 미비함으로 인해 발생한 행정적 ‘사각지대’가 선의의 목회자와 교회를 온전히 섬겨온 성도들을 범죄자로 몰아간다면, 우리는 율법의 문자가 아닌 하나님의 시선으로 이 사태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1. 헌신과 희생으로 일군 400명 부흥의 기적
2021년, 풀향기교회의 상황은 암담했습니다. 남은 교인은 30여 명 남짓이었고, 무리한 건축으로 인한 막대한 부채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이때 손을 내민 것이 거룩한빛운정교회였습니다. 28번에 걸쳐 분립 개척을 지원해 온 거룩한빛광성교회의 아름다운 정신을 이어받은 거룩한빛운정교회는, 초기 비용과 성도들을 파송하며 풀향기교회와의 연합을 이루어냈습니다. 신평진 목사와 파송 성도들에게는 더 편하고 좋은 환경에서 목회하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풀향기교회의 부채를 껴안았고, 잔류한 성도들과 함께 눈물로 교회를 다시 세웠습니다. 그 결과 불과 수년 만에 출석 성도 400명이 넘는 부흥의 기적을 일구어냈습니다. 이것이 정녕 불법과 기망의 결과란 말입니까?
2. 기망이 아닌 규정의 사각지대
신평진 목사를 향해 처음부터 법적 하자를 숨기고 성도들을 속였다는 비난은 사실관계부터 틀렸습니다. 그는 부임 직후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노회에 청목 과정을 신청했습니다. 만약 기망할 의도가 있었다면 애초에 노회에 서류를 제출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미국 명문 프린스턴 신대원을 졸업하고 적법하게 안수를 받았음에도 청목 서류가 반려된 것은, 단지 당시 통합 교단 내 ‘졸업 신학교와 안수 교단’의 불일치라는 행정적 규정과 협력 관계망의 미비함 때문이었습니다. 목회자로서의 자질이나 신학적 흠결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일각에서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고 간을 보던 상황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억측이자 왜곡입니다. 당시 서류 반려의 원인은 국적 문제가 아니었으며, 교단 규정상 이중국적 자체가 청목의 걸림돌이 되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청목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면 그에 맞춰 국적 정리를 진행하는 것이 원래 예정된 순서였습니다.
개척 후 1~2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행정적 문제를 인지했을 때, 성도들은 목회자의 근본적 자격 부족이 아니라는 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래서 교단에 심사를 건의하고 함께 기다리기로 뜻을 모았던 것입니다. 더욱이 작년 총회에서 신 목사가 안수받은 교단 측이 청목 자격 범위에 정식으로 포함되면서, 이제 법적인 막힘없이 처음 약속한 절차대로 청목 과정을 밟아갈 수 있는 길도 열렸습니다.
3. 압도적 재신임과 문제 제기의 실체
그렇다면 왜 지금 이 시점에 이토록 격렬한 문제 제기가 시작되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 교회가 부채에 시달리고 청목 서류가 반려되었을 당시에는 어떤 반대 의사도 표명하지 않던 이들이, 신목사 부임후 첫 임직식 이후에 교회 방향성과 본인들의 뜻이 다르다는 것을 시작으로 돌연 ‘법과 규정’을 무기로 교회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과연 교회의 거룩성을 수호하기 위한 의분인지, 아니면 개인의 서운함에서 비롯된 분열의 시도인지 성도들은 묻고 있습니다.
실제로 풀향기교회 공동의회에서 진행된 신평진 목사에 대한 신임 투표 결과는 213 대 23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나타났습니다. 투표참석 인원이 236명이나 이는 실질적으로 400명의 성도가 신 목사의 목회와 헌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음을 증명한 반면, 교회를 흔드는 무리한 문제 제기의 동조자는 단 23명에 불과했습니다. 절대다수의 성도가 지지하는 목회자를 단 23명의 반대와 법적 틈새를 이용해 흔드는 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입니까?
4. 율법의 문자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레위기 10장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나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리다 죽임을 당한 비극 직후, 남은 이들이 속죄제 고기를 규례대로 먹지 않고 불살라 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모세는 규례를 어긴 것에 대해 크게 노했지만, 아론은 “오늘 이런 끔찍한 비극을 겪었는데, 내가 속죄 제물을 먹는다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보시겠느냐”며 자신의 애통한 동기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규정 위반을 벌하지 않으셨고, 모세 역시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문자화된 규례 이전에, 그 중심에 있는 동기와 하나님을 향한 자세를 먼저 보십니다. 무너져가는 교회를 살리려 희생을 감수했던 순수한 동기, 400명의 성도가 회복을 경험하며 맺은 생명의 열매들은 교단 헌법의 행정적 사각지대라는 이유로 함부로 짓밟혀서는 안 됩니다. 지금 교회에 참된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은 규정의 미비함입니까, 아니면 400명 성도의 뜻을 저버린 채 교회를 허무는 자들의 돌팔매입니까? 우리는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또 다른 파괴를 멈추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화해와 회복의 길로 돌아서야 합니다.
속이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