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가 없는 곳에서 이민자를 두려워하는 이유
작센안할트. 인구 200만 남짓, 독일에서 여섯 번째로 작은 주. 이곳에서 외국인 비중은 독일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길에서 이민자를 마주칠 일이 서독 대도시보다 훨씬 드문 지역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역에서, 반이민을 앞세운 극우정당 독일대안당(AfD)이 9월 6일 주의회 선거를 압도적으로 휩쓸었다. 득표율 44%대. 직전 선거의 두 배가 넘는 수치이자 창당 이래 최고 기록이다. 집권 중이던 기독민주당은 득표율이 반토막 났다. 나치 패망 80여 년 만에 극우 정당이 독일의 한 주정부를 이끌 가능성이 실제로 열렸다.
숫자만 보면 앞뒤가 안 맞는다. 이민자가 적은 곳에서 이민자 혐오가 가장 강하게 표를 얻었다. 이 어긋남이야말로 이번 선거가 던지는 진짜 질문이다.
‘이민자’는 원인이 아니라 스크린이다’
AfD의 선거 전략은 명확했다. 불법체류자 추방, 망명 신청자 노동 의무화, 우크라이나 피란민 지원 축소. 그리고 가장 강력했던 메시지 — 이민자에게 쓰던 세금을 복지로 돌리겠다는 약속. 표면적으로는 전형적인 반이민 캠페인이다.
하지만 작센안할트의 유권자 대다수는 그 이민자들과 일상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들이 실제로 겪는 것은 다른 문제다. 통일 이후 30여 년이 지나도록 서독을 따라잡지 못한 경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젊은 세대, 문을 닫는 병원과 학교, 늙어가는 마을. 실체가 있지만 손에 잡히지 않고, 누구 탓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운 불안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자’는 원인이라기보다 스크린에 가깝다. 구조적이고 복잡한 불안을 투사할 수 있는, 단순하고 형체가 뚜렷한 대상. 세계화나 자동화, 인구 감소 같은 힘은 분노의 과녁으로 삼기엔 너무 추상적이다. 반면 이민자는 눈에 보이고, 이름 붙이기 쉽고, 슬로건에 담기 좋다. 실제 접촉이 없어도, 오히려 없기 때문에 더 손쉽게 상상되고 과장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도 있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곳들
이 어긋남은 작센안할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에서 극우·우파 포퓰리즘이 약진한 지역들,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남미 일부의 극우 지도자 부상, 미국에서 ‘마가(MAGA)’가 가장 단단하게 결집한 지역들을 겹쳐보면 하나의 공통분모가 드러난다. 세계화의 이익에서 비껴나고, 산업 구조 전환의 부담만 떠안은 곳들이다. 그곳에서 반이민 정서는 불안이 즐겨 빌려 입는 옷이지, 불안의 근원 그 자체는 아니다.
물론 이민·통합을 둘러싼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이민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통합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현실적인 정치 의제로 존재한다. 다만 작센안할트가 보여주는 것은, 반이민 정서의 강도가 이민자와의 실제 접촉량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 강도는 ‘내 삶의 미래를 내가 통제하지 못한다’는 감각, 즉 불안정성 그 자체에 훨씬 예민하게 반응한다.
한국은 아직 오지 않은 이민자를 두려워한다
이 구도를 한국에 그대로 옮겨 적기는 조심스럽다. 한국의 이주배경인구는 지난해 271만 명, 총인구의 5.2%에 그친다. 독일 전체 평균보다도 낮은 수준이고, 작센안할트와 비교해도 결코 높지 않다. 그런데 이 수치의 증가 속도는 전체 인구 증가율의 약 50배에 달하며, 늘어나는 이주민의 60% 이상이 20~40대에 몰려 있다. 한국은 이미 온 이민자를 놓고 다투는 사회가 아니라,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앞으로 불가피하게 늘어날 이민자를 놓고 미리 불안해하는 사회에 가깝다.
이 선제적 불안은 독일의 경우와 같은 논리를 공유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다문화·이주노동자에 대한 반감은 실제 접촉 경험보다는 일자리 경쟁, 치솟는 주거비, 좁아지는 취업문에 대한 청년층의 불안과 훨씬 강하게 맞물려 나타난다. 눈앞의 경쟁자는 특정 국적의 이주민이 아니라 대체로 같은 한국인 또래이지만, 정체가 불분명한 ‘경쟁 압박’보다는 ‘외국인 노동자 유입’처럼 형체가 뚜렷한 대상에게 불만을 투사하는 편이 심리적으로 더 쉽다. 작센안할트의 유권자들이 실체 없는 이민자에게 분노를 겨눴듯, 한국의 일부 청년층도 아직 크게 늘지 않은 이주민을 향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먼저 겨누고 있는 셈이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유럽 극우 정당은 이민 문제를 정치적 동원의 중심축으로 세워 선거 승리라는 구체적 성과를 냈다. 반면 한국에서 정치적 극단화를 이끌어온 축은 이민이 아니라 세대·젠더 갈등, 이념 대립, 그리고 2024년 말 비상계엄 사태 이후 심화된 정치 양극화였다. 즉 한국은 ‘이민자 없는 반이민 정서’라는 정서적 토양은 독일과 닮았지만, 그 정서가 아직 뚜렷한 정치 세력이나 선거 결과로 조직화되지는 않은 단계에 있다. 문제는 이 토양 위에 저출생 대응책으로 이민 확대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지금은 흩어져 있는 온라인상의 반감이 독일처럼 조직된 정치 동력으로 응집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독일의 거울, 한국의 질문
독일 사례가 던지는 진짜 질문은 “극우가 다시 득세할 것인가”가 아니다. 왜 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일수록, 왜 이민자를 거의 마주치지 않는 주민일수록 ‘이민자 때문’이라는 설명에 더 쉽게 설득되는가다. 답은 이민자 숫자가 아니라, 그 불안을 오랫동안 방치하거나 오히려 키워온 정치·경제 시스템의 시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증거는 독일 주류 정당들이 지켜온 ‘방화벽(Brandmauer)’ 전략, 즉 AfD와는 연정도 협력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이번 선거에서 득표 자체를 막지 못했다는 데서 드러난다. 정당을 고립시키는 전략만으로는 그 정당을 밀어 올린 근본 원인까지 건드리지 못한다.
한국이 이 거울에서 읽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한국은 아직 독일식 방화벽이 필요한 단계, 즉 반이민 정당이 40%대 득표율로 제1당이 되는 단계에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전 단계 — 실체 없는 불안이 특정 집단을 향한 정서로 응고되기 시작하는 단계 — 는 이미 진행 중일 수 있다. 저출생으로 인한 이민 확대가 불가피한 정책 의제로 떠오르는 시점과, 청년층의 고용·주거 불안이 가장 첨예한 시점이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작센안할트가 증명한 것은 이 정서가 조직될 정치적 그릇만 마련되면 실제 이민자 수와 무관하게 순식간에 득표로 전환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그 그릇이 만들어지기 전에, 정당 간 연대나 배제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층이 느끼는 불안정성 자체를 정책으로 다루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