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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닫힌 체계는 신화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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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신학대의 박영식 교수 해임에 대하여./ 양혁승 교수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옮긴 기사임을 밝힙니다.

    서울신학대학교가 성경을 과학의 근거로 오독한 ‘창조과학’을 비판하고 진화론을 수용했다는 것을 빌미 삼아 박영식 교수를 해임했다고 한다. 건강한 비판 정신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장(場)이 되어야 할 대학에서 이러한 의사결정이 일어났다는 것은 매우 실망스럽고 우려스러운 일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사상과 이론은 비판에 열려 있어야 한다. 철학자 아도르노는 “계몽은 신화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 스스로 신화가 되었다“고 일갈한다. 이성의 빛으로 어두운 신화와 미신의 세계를 몰아내겠다는 계몽조차도 스스로를 향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닫힌 체계가 되었을 때 또 하나의 신화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닫힌 체계는 결코 생명력 있는 진리를 담는 그릇이 될 수 없고 그것을 권력 기반으로 삼는 자들의 지배 이념으로 악용될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닫힌 체계를 자신의 신념체계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 체계 속 지배자들의 노예나 먹잇감이 된다.

    신앙 영역에서 이런 위험성은 더 커진다. 이단 교주들이나 성장 신화에 도취된 일부 종교지도자들이 닫힌 신앙 체계를 앞세워 자기들만의 신화의 성을 쌓고 이러 저러한 이유로 모여든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지배하며 그들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부린다.

    기독교인들이 믿는 창조주 하나님은 영원자이시고 무한자이시다. 시공간의 조건 안에 갇혀 과학적 실증의 대상이 되는 분도 아니고, 유한한 인간이 세운 특정한 신앙 체계에 갇히거나 그것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분도 아니다. ‘창조과학’이나 성경의 ‘축자영감설’이 부정된다고 해서 그로 인해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과학은 하나님께서 시공간 속 피조세계에 심어놓으신 규칙성을 실증적으로 발견해가는 학문이다. 피조세계에서 진화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과학적 검증을 통해 밝혀졌다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세계 속에 심어놓으신 또 하나의 자연질서를 새롭게 알 게 된 것에 감사하며 경탄하면 될 일이다. 피조세계에서 작동하는 진화이론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것을 이념화한 극소수 진화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기독교인은 성경 속에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온전하게 담아낼 인간의 사고 및 언어체계는 없다. 노자의 <도덕경> 첫장에 나오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는 경구도 인간의 사고 및 언어 체계의 이러한 한계를 지적한 말이다.

    성경이 쓰여진 콘텍스트를 배제한 채 문자적 해석을 절대화하고 그 안에서 그 진리를 지켜내겠다고 한다면 그 의도와는 다르게 생명력 있는 진리 대신 문자 속에 박제된 신화를 지키는 꼴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진리의 정수를 붙잡되, 시대적 맥락에 맞게 성경을 해석하고 재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해석의 제한적 한계 또한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이번 서울신학대학교의 박영식 교수 해임 조치는 이런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들이 과연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묻고 싶다. 성경 속 진리 탐구 정신인지, 아니면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인지 말이다. 후자라면 이는 성경을 문자에 가두어 그 살아있는 생명력을 잃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살아있는 진리이지, 닫힌 교리체계가 아니다. 시대와 더불어 호흡하고, 비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닫힌 신화에 갇히지 않고 열린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글 양혁승.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재단 이사장.
    경실련 상임집행 위원장 역임.
    연세대학교 정년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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